[얼굴없는 남자] 무지와 거짓 평화
[얼굴없는 남자] 무지와 거짓 평화
  • 대경뉴스
  • 승인 2019.03.0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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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이 1938년 9월 29일에 히틀러와의 뭔헨협상을 마치고 귀국해 '우리 시대는 평화로울 것입니다'라고 선포했을 때, 영국국민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체임벌린은 자신이 단지 개전 시기를 늦춘 것이 아니라 '명예로운 평화'를 확보했다고 믿었다. 체임벌린은 군비확충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그가 해임한 공군장관 스위턴은 "체임벌린이 전제군주처럼 자신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게 된 것은 생애 처음으로 외교분야에 발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그는 자신이 가장 미숙한 그 분야에서 오히려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자기 주장만 내세우면서 때로는 각료나 전문가와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채임벌린은 자신의 대외정책에 찬성할 사람만 주변에 두길 원했으며, 유화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보수당 의원들은 아예 정부에 들이지도 않았다.

해럴드 니컬슨은 1938년8월26일 자신의 일기에 체임벌린 총리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체임벌린은 세계정치가 뭔지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그 분야를 잘아는 사람의 충고를 듣는 것도 아니다' 

노동당의원 중 한 명인 휴 돌턴은 "체임벌린이 외교경험이 별로 없고, 잘 속아 넘어가는 데다, 아는 것도 없을 뿐더러 체임벌린 자신처럼 자질이 부족한 고문을 경험, 명민함, 지식을 갖춘 사람보다 선호한다"고 평했다.

이를테면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협상을 하러 가면서 외교부 고위관료는 한 명도 대동하지 않고, 국제관계 분야가 아니라 산업 분쟁분야의 전문가인 호러스 윌슨경을 데려갔다.

체임벌린의 잘못은 그가 영국 국경 너머에 대해 훨씬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보다 본인이 대외정책을 더 잘 이해하며, 오로지 자신에게만 독재자들과 건설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총리 한 사람의 손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증명하는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아치 브라운 '강한 리더라는 신화' 의 일부 내용이다.

어설픈 유화주의로 오히려 영국을 위기에 빠뜨린 '체임벌린'이란 이름에 '문재인'이란 이름을 대입해보자.

'닮았다'는 말 보다는 '같다'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안보와 외교에 있어서 만큼은 무지와 독선이 개입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무지한 지도자는 거짓 평화를 비싼 대가를 주고 사온다. 그리고 결국 뒷통수를 맞는다.

어설픈 민족우선주의, 낭만적 평화주의로는 결코 진짜 평화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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